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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두려운 마음을 안고 시작했던 대학생활 시작에 등장한 희진! 언니는 내 대학생활의 첫인상이야. 언니도 알다시피 사람을 만나는 일은 천운이 도와야 하지. 그런 의미에서 난 참 행운아다. 나는 늘 내가 받는 사랑을 돌려 주며 살겠다 다짐하는데, 희진을 만나며 한 번 더 다짐하게 됐어. 가끔은 내가 모질게 굴어도 나라는 이유로 모든 걸 괜찮다고 말해 주는 사람아! 새출발을 진심으로 응원할게. 실패와 두려움을 이기는 사람이 되자. 언니는 언제든 돌아올 곳이 있다는 걸 잊지 마. 내리는 비는 함께 맞아 줄게, 나는 희진의 소희이니까.
수민에게
수민을 처음 만나게 됐던 계절이 돌아온다!
자주 이야기 하듯 시간이 흐르는 게 징그럽구~
곧 추워질 텐데 추울 때마다 달려가 안아 줄 수 없으니
(그랬으면 좋겠지만) 목도리를 샀다네
근래 기운 빠진 모습에 신경이 많이 쓰였는데,
개인적으로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일부러 가만히 둔 경향도 있다
이 과정에서 서운함, 외로움, 불안함을 느꼈을 수 있겠지만
(안 그랬다면 다행이지만) 나라고 마냥 넋놓고 있었던 건 아니구
늘 지켜보고 있었따는 걸 말해 주고 싶었ㅇ
나도 수민이 없으면 섭섭하구 외롭구....
그치만 어느 정도 고뇌와 인내 끝엔 발전이 있겠지?라고 바라면서
허나 꼭 혼자 인내할 필요는 없으니
처지는 기분이 계속 된다면 같이 풀어 보자구 나도 그럴게
갑작스럽게 적게 된 편지라 서툰 상태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함께 해 줄 거지?
나도 그럴게
사랑하는 소희가
과열됐던 감정이 잦아들고 끊임없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휴대전화 창을 열고 몇 번 두드리면 전할 수 있는 안부를 며칠이고 꾹꾹 참았다. 아직 일들이 다 끝나지 않은 네게 방해가 될까 봐.
솔직히 말하자면 연락을 하지 않는 동안 생활이 그리 엉망은 아니었어. 늘 그랬듯 마주치는 친구들과 시간을 함께하고, 오는 연락에 응하고. 지극히 평범하고 안정적인 날들을 보냈는데 늘 허전했네. 생활은 엉망이 아니지만 머릿속엔 늘 네 생각이 구름처럼 떠 있어 틈만 나면 골몰히 생각에 잠기곤 했어. 다른 사람이 보내는 안부 인사가 아니라 나는 수민이 보내는 안부 인사가 필요한 거구나. 생활이 풍족하든 부족하든 그건 별개의 문제였고, 네 존재의 부재를 느끼는 시간이었어.
시간을 보내며 내가 왜 지속적으로 감정을 참는지에 대해 생각해 봤어.
누구나 그렇겠지만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거부당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어. 평소 강하게 인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내가 관계에서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요령들이 거부당하지 않기 위한 기술에 가까워. 좋아하는 사람, 나에게 영향이 큰 사람일수록 거부에 대한 두려움이 강해지고. (부모님과의 기억에서 형성된 태도기도 해.) 그렇기에 우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부분까지 수용하는 자세가 나와. 그리고 내가 전부 수용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해. (이게 가장 큰 오산이다.) 그러기에 내 마음은 뒷전이 되고 상황은 반복되다가 상대방에게 한 번에 이야기하는 패턴을 가지게 됐어. 이 패턴의 원인은 내 감정을 말했을 때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오는 경험이 적어서 그렇다는 결론이 났다. (타인의 반응이란 늘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니까.) 바로바로 해결하지 않고 쌓아 두면 작았던 문제도 큰 문제가 되어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올 확률은 더욱 낮아지는데 말이야.
이 패턴을 정리하면서 찾았던 스스로의 모순이 있었어. 타인이 나에게 묻지 않고 나의 반응을 판단하는 것을 불쾌해하면서, 스스로는 쉽게 판단내리고 있었다는 것. 악순환을 끊지 못하고 스스로 더 넓은 아량을 가지지 못해서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린 시간이 길어. 많은 연습이 필요한 부분이란 걸 스스로 인지하고 있기도 하고.
내가 외면하고 있었던 수민에 대한 한 가지 불안감이 있었어. 2월에 있었던 일화와 내가 불만을 표했던 다른 사람 만나는 말에서 종종 수면 위로 떠올라. 관계가 단단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알면서도 종종 보이는 타인에 대한 언급이 시작되면 나는 자동적으로 날카로워지곤 해. 네 마음을 알면서도 내가 모르는 같은 이슈가 발생할까 봐 의심하고 속상해지는 순간들이야. 그래서 청개구리처럼 벗어난 답을 주곤 했어.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냥 굽히고 나는 수민과 함께하고 싶다는 말을 해 줬으면 됐을 텐데 말이야. 아직까지 그런 일이 반복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남아 있어서 그랬나 봐.
사랑하면서 내려 놓지 못하는 자존심들이 서로에게 '어디까지 하나 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그것이 결국 지속적인 의심과 스트레스가 되는 모양이야. '네가 먼저 믿음을 주면 나도 믿음을 줄게'라는 태도를 서로 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는 마음에 없는 말로 네 심기를 거스르는 일은 이제 그만하겠다고 다짐했어. 결국 나를 속이는 일과도 마찬가지니까.
혼자 생각을 정리하며 '이 시간을 보내면서 네 마음이 돌아서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도 들었어. 그렇다면 정말 어쩔 수 없지만... 그 틈 사이에 기회가 있다면 나는 늘 최선을 다하고 싶어. 감정을 눌러 담는 것보다는 현명한 해결에 대해 모색하는 것이 관건이겠지. 서로는 서로에 대해 많은 부분을 알고 있지만, 그저 알고 있기만 해서 대립했던 것 같아.
근래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글을 읽었어.
삶에 문제와 고통은 필연시 발생한다. 맑은 물에 흙이 들어오는 것과 같다. 물에 떠다니는 흙을 하나하나 골라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또 이것을 가만히 놔두면 맑은 물과 흙으로 분리되겠지만, 이것은 가라앉았을 뿐이지 정화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흙탕물에 계속해서 맑은 물을 부어 준다면 물은 맑게 변한다. 그 글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삶의 문제와 고통을 제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좋은 것을 지속적으로 채워 주는 것이 삶이 나아지는 첫 걸음이라는 것이다.
관계도 이와 유사하다고 느꼈어. 문제를 덮어 두는 것이 아닌, 천천히 해결하고 이해하며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이 쌓인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가지게 된 상처들도 상쇄될 수 있을 거야.
너무 이성적인 말들의 나열일까? 나는 순간 스치는 감정으로만 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이해하려는 방식으로도 사랑해. 나는 앞선 이해들로 내일의 수민도 사랑하게 돼. 조금 더 '믿음'직스러운 사랑을 주고 싶은 내 방식이 네 마음에 닿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수민도 한 발짝 더 넓은 마음으로 나를 이해해 줄 수 있길. 글을 마치는데 괜시리 눈물이 나. 보고 싶어.
어느 물리 교수가 우주가 끊임없이 팽창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의 몸이 팽창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몸이 우주가 팽창하는 힘을 견뎌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언니는 약을 먹기 싫어한다.
나는 과거에 언니에게 내가 널 어떻게든 병원 데리고 갈 거니까 언제까지 안 가는지 보자고 으름장을 놓았는데
결국 이루어졌다. 언니랑 지내는 건 내 연애 생활 중 가장 연애다운 연애, 온기 있는 연애다.
연애라는 단어는 끝이 있는 것만 같아 쓰기 싫지만.
언니 주식 미수금을 또 막아 줬는데 기분이 묘하다.
나 돈 보고 만나? 이런 말 너무 웃기지만... 이게 반복되면 좋지 않을 것 같다.
어쨌거나 내 몫돈이 움직이는 거니까.
얘가 날 뭘로 보나... 싶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 들다가도 수민이가 아침에 나를 깨우러 오고
깨우러 와서 나를 꼭 안아 주고
같이 집에 와서 선잠을 자다가 가는 일들이 반복됐으면 하고
사람은 이렇게나 이중적인데
어떻게 긴 사랑을 하는 걸까
이런 기억들이 모여서일까?
긴 사랑이 궁금하다는 마음을 버릴 수가 없다
모든 풍파를 겪고 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생일 축하해요
잘생겼는데
상처는 많아 보이구
그러니까 나도 괜히 센치해지는데
싫어하는 것 같다가도 내 허벅지에 눕는 모습을 보면
그게 되게 아기 같아
나는 언니가 보고 싶고 좋은데
이게 사랑인지는 모르겠구
그냥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
언니가 나한테 감기가 옮았다는 사실이
조금은 기뻤어
알 수 없는 메시지에서 언니는 ㅋㅋㅋ를 남발했지
즐거운 걸까? 옮은 게?
집으로 온 편지 잘 받았어. 역시나 예상했던 반응이 와서 웃기네. 아무래도 내 인상이 무뚝뚝한 편에 가깝긴 하지. 위로받는 느낌이라니 다행이다. 그냥 말하는 거면 몰라도 '편지'라는 말이 붙으면 괜시리 진지해지게 되네. (부담스럽니?) 바쁘게 살다 보면 편지 쓸 일이 자주 없기도 하고, 매번 이런 텐션으로 이야기하면 약간 오글거리기도 하니까 이런 모습은 최대한 안 보이려고 하긴 해. 이왕 쓰는 '편지'니까 이럴 수 있는 거지.
체력장도 잘하고 밥도 잘 먹고 있다니 아주 다행이구나. 아무래도 시완이는 싹싹한 편이니까 거기서도 다마고치 생활 잘 하고 있으리라 믿었는데 그대로네. 그 규칙적인 생활이 지금은 짐승 같다니! 나는 그 생활이 안 돼서 짐승 같은데.... 역시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인가 보다. 시키는 거 너무 열심히 하지 마. 적당히 뺀질거리면서. 오케이? 내가 말 안 해도 잘하겠지만.
어제는 이지, 진혁과 동방에서 밤새워 과제했다. 안 그래도 디자인 과제가 너무 안 풀려서 '저 진짜 좃망한 것 같애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유일하게 아는 과 동기가 그거 안 낸 사람 많다고 해 주는 바람에 지금 마음이 좀 가벼워. 그래서 편지할 수 있나 보다. 마음이 가벼워지니까 술이 마시고 싶은 거 있지.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막상 너 가고 나서 서로서로 바쁘다 보니 우리끼리 노는 시간이 많이 줄었어. 입대 앞둔 널 위해 자주 만났다고 해도 난 그 시간이 참 즐거웠는데. (누가 보면 세상 끝나는 것처럼 말해서 민망하네.)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집에 돌아오면 허한 느낌을 받는 게 아주 생소해. 오늘 합주는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들어서 더 그랬을지도.
금요일에 밴드 공연 세션을 서게 됐어. 전자과 소학회 들어갔다고 얘기했었나. 너무 오랜만에 서는 밴드 무대라 긴장되네.... 특히 이건 남의 집 잔치니까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가득이다. 나중에 보고 싶으면 얘기해. 영상 남겨 둘게.
읽을 거리를 좀 줘 볼까. (헛소리하겠단 이야기.) 최근 대학 오기 전 알던 사람 몇 명과 연락을 끊었다. 그걸 잊기 위해 밥팸에 더 부단히 나갔던 것도 있었어. 예전이라면 상실감에 많이 허덕였을 텐데 이제는 그러려니 하게 되네. 나는 주변 인간관계에 총량이 있다고 생각해. 너희를 알게 되니 몇 명은 보내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 하면서 말이야. 모두를 안고 가기엔 사람의 팔은 너무나 짧으니까.
혹시라도 원하는 편지의 방향이 있다면 얘기해 주라. 유머글이라도 긁어다 줄게. (이런 이야기들이 너무 무거울 수 있으니. ㅋㅋㅋ) 오랜만에 손글씨 꾹꾹 눌러쓴 편지를 봐서 내가 더 즐겁다, 시완아. 아마 이미 자고 있겠구나. 내일도 생각 없는 하루를 맞이하길! (그게 좋은 거니까.)
소희가
편지 링크 남겨 주고 갈 줄 알았는데 이렇게 숨겨 놓고 가다니, 시완아. 희진 언니한테 소식 듣고 급하게 막차 탔다. 나도 편지 쓰고 싶었단 말이야. 첫 편지는 어그로로 시작하려 했다만 어떻게 첫 편지부터 그러나 싶어서. 편지 쓰는 스타일이 평소 내 말하는 스타일과 좀 달라서 낯설게 느껴지면 어떡하나 괜한 걱정 중이다. 어떠면 우리가 밖에서 나눈 대화보다 편지로 나누는 말들이 많을 수도 있겠다 싶네. 즐겁게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상투적인 질문이지만 잘 지내고 있니? 군대가 아니더라도 낯선 환경에 들어가면 생각이 많아지는 게 사람이니까. 큰 마음 고생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떤 마음을 지니고 있는지 궁금하다. 복잡하지 않은 마음이면 좋겠네. 다들 널 많이 생각하고 보고 싶어해. 나도 그렇고. 희진 언니나 진혁 선배만큼 깊은 얘기는 못 나눴지만 매일 얼굴 보던 사이니까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더라고. 나는 이제 슬슬 몸이 회복되고 있는 중인데, 얼른 간호 마스터해서 이 골골거리는 나도 케어해 줄 수 있겠니. 선배, 약 드셔야져. 요즘 네 억양 성대모사를 익혀서 주변 사람들이 시완이 얘기 꺼내면 내가 옆에서 '맞죠'라고 해 준다. 희진 언니한테 들었는데 너도 관계적으로 속으로 앓는 타입이라고 하더라. 안에서 외롭더라도 밖에 사람들은 항상 널 기다리고 있으니까 혹여나 외롭다면 이 소식으로 그 마음이 좀 상쇄되면 좋겠다. 시기가 뜸해지더라도 네가 돌아올 자리는 분명하게 있을 테니까. 입대할 때 p.s.로 적었던 말 기억하지. 그거 담보로 잡고 찾아 주라. 널 위해 쓴 말이기도 하지만 날 위해 쓴 말이기도 하니까. 나의 필요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ㅋㅋㅋ) 그렇게 해 줄 수 있지?
임실의 풍경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여기는 철쭉이 다 지고 장미가 피고 있다. 날도 더웠다 추웠다 일교차가 심한데 몸 관리 잘해, 시완아. 몸이 덜 아파야 마음도 덜 아파. 내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부분이다. 안에서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고민이 생기면 질문을 던져 주어도 좋아. 네 눈에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다만 나도 굉장히 생각 많은 사람이거든. 해답은 못 줄 수도 있지만 같이 고민한다는 존재감은 전해 줄 수 있어.
그곳 안에서 훈련도 훈련이지만 조금 더 성숙해진 시완이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선배라기도 민망하지만 네가 나올 쯤이면 조금 더 든든한 선배가 되고 싶어. 너무 교훈적인 편지가 됐을까? 하지만 편지의 묘미란 이런 것 아니겠니. 막차 안 놓쳐서 다행인 것 같아. 다음에 또 편지할게.
220515
소희가